페루 함정 4척 6,250억원에 수주한 현대중공업, 중남미 진출로 ‘K-방산’ 저변 넓히나

함정 수출 이어가는 HD현대중공업, 페루 사업이 남미 '교두보' 역할 하나
K-방산 경쟁력 강화 수순, 부진하던 함정 분야도 '급성장' 개연성
동남아, 중동, 남미까지 노린다, 성장성 노리는 '수출 전략' 가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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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D현대중공업이 페루로부터 수주한 3,400t급 호위함(가운데), 2,200t급 원해경비함(아래), 1,500t급 상륙함(위)의 조감도/사진=HD현대중공업

페루 해군이 전력 및 유관 산업 강화를 위해 추진한 함정 건조 프로젝트 사업자로 HD현대중공업을 낙점했다. 수주 전체 금액 규모가 크진 않지만 남미 지역으로 수출길을 확대하는 데 교두보 역할을 할 수 있단 점이 이번 페루 프로젝트 사업의 최대 의의다. 이를 통해 당초 국내 방산 산업에서 아픈 손가락으로 취급되던 함정 분야도 급성장을 이룰 수 있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HD현대중공업, 페루 함정 사업 수주

HD현대중공업은 29일 페루 국영 시마(SIMA)조선소로부터 3,400t급 호위함 1척, 2,200t급 원해경비함 1척 및 1,500t급 상륙함 2척 등 총 4억6,290만 달러(약 6,250억원) 규모 함정 4척에 대한 현지 건조 공동생산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고 밝혔다. 이번 수주는 전체 금액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중남미 지역에 K-방산의 바람이 흩뿌려질 개연성을 더했단 점이 의의가 크다.

남미 지역은 노후 함정이 많아 최신 함정 교체 수요가 꾸준히 있기 때문에 이번 사업이 향후 다른 국가로도 함정을 수출할 수 있는 교부도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이번 사업 규모가 한국 기업으로선 남미 지역 방산 수출 중 최대 금액 계약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HD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이번 수주는 국방부, 방위사업청, 산업통상자원부, 주페루 한국대사관, 코트라(KOTRA) 등 정부 기관과 기업이 ‘팀코리아’가 되어 이탈리아, 스페인, 네덜란드 등 쟁쟁한 경쟁국들을 제치고 이뤄냈다”고 힘줘 말했다.

HD현대중공업은 페루 현지 시마조선소와 협력해 오는 2029년까지 함정을 차례로 페루 해군에 인도할 계획이다. HD현대중공업이 함정의 설계, 기자재 공급 및 기술 지원을 수행하고, 시마조선소가 최종 건조를 맡는다. 오는 4월 예정된 본계약이 체결되면 HD현대중공업은 향후 15년간 페루 해군의 전력 증강을 위한 전략적 파트너로서 협력도 하게 된다. 이는 앞으로 HD현대중공업 측이 먼저 사업을 포기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기 전까지 사실상 페루 해군에 함정을 독점적으로 공급할 수 있다는 뜻이다. 전체 함정 대수는 이번 계약 완료 과정에 공개되지는 않았으나, 앞서 페루 정부는 해군 함대를 현대화하기 위해 총 23척의 선박을 건조할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이를 고려하면 전체 사업비 규모는 수조원대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에 수주한 호위함은 길이 127m, 폭 14.9m, 최대속도 26.5노트, 항속거리 6,000해리로, 대함미사일과 수직발사대가 탑재되고 대공 탐지 능력을 높일 수 있는 AESA 레이더가 장착될 예정이다. 원해경비함은 길이 95m, 폭 14.3m, 최대속도 20노트, 항속거리 6,000해리로 중형 해상작전 헬기를 운용할 수 있다. 또 다양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탑재 장비를 쉽게 변경할 수 있는 ‘미션 모듈’도 적용한다. 상륙함은 길이 58m, 폭 13.2m, 최대속도 10노트, 항속거리 1,500해리로, 대형 장갑차 7대 이상 또는 20피트 컨테이너 20개 이상을 수송할 수 있다. HD현대중공업 특수선 사업대표 주원호 부사장은 “이번 수주는 남미 함정 시장 개척을 위한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며 “풍부한 수출 경험과 앞선 기술력으로 남미 시장에 K-함정 진출을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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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석 HD현대중공업 부회장과 존 하위(John Howie) 밥콕 최고기업업무 책임자 등이 2023년 6월 개최된 ‘국제해양방위산업전(MADEX 2023)’에서 기술협력합의서(TCA)에 서명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HD현대중공업

수상함 건조·수출↑, K-방산 미래 밝아오나

HD현대중공업은 이전부터 수상함 건조를 꾸준히 이어왔다. 2008년 대한민국 최초의 이지스 구축함 ‘세종대왕함’의 인도를 시작으로 세종대왕급 이지스 구축함(KDX-Ⅲ) 2척을 성공적으로 인도했으며, 우리 해군이 발주한 차세대 이지스 구축함 3척도 모두 수주했다. 국내 최다 수상함 건조 실적도 HD현대중공업이 보유한 기록이다. HD현대중공업은 1975년 한국 최초의 전투함인 ‘울산함’ 개발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이지스 구축함 5척, KDX-Ⅱ 구축함 3척, 호위함 12척, 초계함 6척, 잠수함 9척, 경비·구난함 31척, 지원함 7척, 수출함 14척 등 총 102척의 최첨단 함정을 건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출도 거듭 이어가고 있다. HD현대중공업은 지난 1988년 뉴질랜드에 군수지원함 ‘엔데버호’ 인도를 시작으로 1997년 방글라데시에 해군용 경비함 ‘마두마티함’, 2020년 필리핀에 2,600t 규모의 호위함 ‘호세 리잘함’을 인도하는 등 총 14척의 함정을 해외에 수출하며 국내 최다 함정 수출 실적을 기록했다. 또 지난 2022년엔 필리핀으로부터 2,450t급 원해경비함 6척을 수주한 바 있으며, 지난해엔 국제해양방위산업전(MADEX 2023)에서 밥콕 캐나다와 ‘캐나다 수출용 잠수함 사업을 위한 기술협력합의서(TCA)’를 체결하기도 했다. 통칭 ‘K-방산’ 수출의 미래가 밝게 전망되는 이유다.

‘아픈 손가락’ 함정 분야, 페루 사업 기점으로 저변 넓힌다

당초 그간 함정 분야는 한국이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분야 중 하나로 평가됐다. 최근 K9 자주포, K2 전차, 탄도탄 요격미사일 천궁Ⅱ 등 지상방산무기와 FA-50 경공격기 등 항공기, 잠수함과 각종 호위함·초계함 등 방산 수출 품목을 다양화하며 K-방산 골드러시 시대가 도래했다는 언급이 거듭 나왔지만, 특수선사업부 함정 수출 실적은 방산 수출 2∼9위권인 프랑스·러시아·독일·이탈리아·영국·스페인 등 유럽권에 비해 훨씬 못미쳤기 때문이다. 다만 최근엔 HD현대중공업이 ‘수출형 함정 방산’ 고도화를 목표로 내걸고 함정 방산 수출에 적극 투자하면서 국내 방산 산업의 궤도가 다소 변했다.

HD현대중공업은 필리핀을 기반으로 하는 동남아 수출 기반 확충에 이어 중동, 남미 지역까지 함정 수출 기반을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사우디아라비아와는 국영조선지주회사(SOFON)와 함정사업 협력을 적극 진행하고 있으며, 4,000t급 호위함 및 3,000t급 중형잠수함 등을 현지에서 건조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호주는 3,000t급 호위함 11척 등 10년간 수상함대 건조 계획을 발표했는데, 협상 대상에 HD현대중공업이 포함돼 있다. 중형잠수함 3척 건조 계획을 발표한 폴란드에도 HD현대중공업이 입찰 참가를 준비 중으로, 올해 우선협상대상자가 선정될 예정이다. 이런 가운데 이번 페루 호위함 사업에 입찰한 것도 방산 수출 저변을 넓힐 최적의 기회다.

HD현대중공업은 차별화된 함정산업 역량으로 함정 수출 경쟁력을 높이고 대상국과 협력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필리핀 호주 사우디아라비아 호주 등의 ‘해군 현대화’ 프로그램에 맞춰 맞춤형 패키지 전략을 제안하는 한편 함정 방산 협력을 통해 대륙별 함정 생산기지 및 해양 거점을 확보하겠단 것이다. 예컨대 동남아 함정 수출 전초기지는 필리핀, 중동은 사우디, 유럽은 폴란드, 남미는 페루, 오세아니아는 호주 등 5대양 6대주에 수출전진기지 및 함정 건조·정비유지(MRO) 도크까지 갖추겠다는 전략이다. HD현대중공업을 중심으로 함정 분야까지 꽉 쥐게 된다면, K-방산이 한국의 미래 먹거리 산업으로 도약할 날도 머지않았으리란 평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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